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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및 양성평등 인식 향상 공모전 "다양성을 존중 받을 권리"] 입선 작품
작성자 : 연수빈
간호학과 지시연 님의 입선 작품입니다.

[혐오과잉 시대]

간호학과 지시연

당신은 누군가를 혐오하진 않았는가? 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아니오. 라고 답을 하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바뀌었다. 첫 문장인 “우리는 ‘혐오 과잉 시대’에 살고있다.”는 혐오라는 단어에 대한 이전의 관념을 바꾸게 하였다.

혐오 과잉 시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남을 모욕함으로써 추락의 두려움을 불식시키고, 상대적으로 우월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일시적으로 위안을 삼는 혐오의 시대가 창궐하고 있다. 청소년은 공짜 밥을 먹는 ‘급식’이니까, 20대 청년은 사회에 무관심한 ‘정치 무식자’니까 , 주부는 자기 아이만 아는 ‘맘충’이니까 혐오당해 마땅하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이런 표현들과 혐오메커니즘은 우리 사회에서 SNS나 유튜브, 방송등에서 빈번하게 쓰이고 나 또한 대수롭지 않게 사용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 표현들이 어떤 뜻인지도 잘 모른체 재미를 위해 사용했던 것 같다. 나처럼 이 사회에서 일시적 쾌감과 재미를 추구해나가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들이 혐오 메커니즘이 완고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혐오 즉 차별을 일으키는 일에 동조했다는 것이 부끄러워지고, 표현들의 의미뿐만 아니라 혐오과잉시대에 대해 진지하게 논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혐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이면을 살펴보고 깨닫기 위해선 이 책은 정말 인상깊고, 효과적이었는데, 저자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차별과 배제, 편견의 순간을 그 대상에 따라 나누어 자세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세대 속에 흔히 접하는 청소년, 20대 청년, 주부, 노인부터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세월호 피해자, 노동자, 조선족, 이념에 대한 사상등까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차별과 배제, 편견의 모든 형태를 전방위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는 혐오가 일상이 되어가는 우리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어 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과 우리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선 무엇이 지켜지고, 이루어져 있어야하는 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혐오의 예를 들자면 가장 빈번하고, 사회에 심각한 혐오인 장애인 혐오를 말할 수 있다. 장애인 혐오는 유서가 깊다. 대표적인 예가 속담이다. 속담은 옛말이고, 옛말 그른 것 하나 없다는 얘기도 흔히 하지만, 속담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장애인에 대한 비하와 혐오의 정서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이렇다.

“귀머거리 들으나 마나.” 귀머거리는 알아듣지 못하니 들으나 안 들으나 매한가지인 것처럼, ‘일을 하나 하지 않으나 별로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진짜 그럴까? 청각장애인도 사람이고, 직감이라는 게 있다. 소리는 못 들어도 상대방의 표정이나 입 모양, 주변의 분위기만으로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대부분 안다. 명백한 장애인 혐오다. 언어장애인은 말을 잘 못할 뿐,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언어장애인을 비장애인과 전혀 다른 사람, 달라야 하는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이 속담은 인종차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권 의식이 발달한 지금은 장애인 혐오가 좀 수그러들었을까? 그렇지 않다. 장애인 인권에 대한 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신자유주의로 인해 차별 의식이 만연해진 탓에 장애인 혐오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오히려 새로운 표현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네티즌이나 청년들 사이에서 많이 쓰이는 ‘애자’(장애자의 줄임말)나 ‘병맛’(어떤 언행이나 표현이 병신 같지만 재미있다는 뜻)이라는 표현이 그렇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에도 장애인 혐오가 많다. ‘벙어리장갑’이나 ‘절름발이식 행정’, ‘눈먼 돈’, ‘외눈박이의 시각’, ‘권력에 눈먼’ 같은 말이 그렇다. 워낙에 통상적으로 쓰이는 말들이라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사용하지만, 장애인들로서는 가슴을 후벼 파는 말들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벙어리장갑’을 ‘손모아장갑’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다른 말들도 이처럼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혐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 혐오는 즉 차별에서 시작한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배경에서 이러한 생각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혐오, 차별을 줄이고 없애기 위해선 어떤 문제에 대해 법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국민의 생활과 사고에 있어서 강력한 사인으로 작용한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혐오 발언은 기본적으로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다. 가능하다면 혐오 표현에 대해 사회적 지위와 권력에 비례한 가중처벌 조항이 있으면 좋겠다. 같은 혐오 표현이라도 일반 서민과 지위·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적 영향력과 해악은 비교가 안 되기 때문이다.

둘째, 경제적 격차를 줄이고,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극심한 경제적 격차는 혐오와 차별의 물적 토대다. 경제적 격차가 몇 배, 혹은 몇십 배 차이가 나면 서로 ‘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몇백 배, 몇천 배 이상 차이가 나면 ‘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지금 혐오가 난무하는 것도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인해 경제적 격차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경제적 격차는 결국 능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능력이 얼마나 경제적 가치가 있는가, 능력 간 경제적 격차는 얼마만큼이 적당한가는 모두 제도와 인식의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대학교수와 버스 기사의 임금 격차는 두 배 이상 나지만, 핀란드는 비슷하다. 우리나라 버스 기사가 핀란드의 버스 기사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은 제도와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지 그 능력의 차이 때문은 아니다. 이와 같이 능력의 문제가 아닌 제도 자체가 차별에 적합한 환경에 놓여 있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꼈고, 개선해야한다고 생각하였다.

셋째, 공동체적 가치 지향을 담은 진보적인 이데올로기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신자유주의’라는 극단적이고 보수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시대다. 이에 맞설 만한 진보적인 이데올로기가 절실하다. 이것이 결여되어 있으니 정신은 황폐해지고, 삶은 무가치하며, 분노는 방향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에 사람들은 손쉬운 희생양을 찾으려 하고, 사회 주류의 압력과 선동에 쉽게 굴복하게 되어 후에 혐오라는 사회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을 나는 생각하지만, 누군가를 혐오하지 않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축적된 관용적으로 쓰이는 혐오 표현들이나 사상들이 적지 않기에, 그런 표현들을 씀으로써 우리의 내면은 자연스럽게 혐오 정서에 물들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글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혐오, 차별을 줄이고 하지 않기 위해선 먼저 남과 비교하는 습관을 고치자는 것이다. 사소하지만 나조차도 비교하는 습관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차별을 줄이고자하는 노력중 가장 큰 효과를 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적으로라도 혐오 정서에 함부로 물들지 않기 위해서는 섬세한 감수성을 갖고 자신과 주변을 자꾸 비교하지 않고 돌아보지 않으면 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번질 것이고, 후에는 사회까지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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